삼성 ‘백혈병 보상안’에 피해자들 “그럼 나는…”
한겨레 김민경 기자

혈액암·뇌종양·유방암만 인정
조정위 참여 안한 제보자만 170명
다발성경화증·희귀병 등 보상 제외
삼성쪽 “조정과정서 검토 가능”

18일 오전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서 만난 김미선(35)씨는 며칠 전부터 갑자기 잘 보이지 않는 눈 탓에 힘들어 했다. 시신경 염증과 마비는 김씨가 걸린 희귀난치병 다발성경화증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건강하던 김씨가 다발성경화증에 걸린 건 삼성전자 엘씨디(LCD) 기흥공장 근무 3년차인 2000년. 지금 김씨는 시각장애 4급 판정을 받은 상태라 시력을 아예 잃을까봐 마음 졸인다.
그런 김씨한테 16일 ‘삼성전자 발병 관련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조정위)에서 삼성 쪽이 공개한 보상안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삼성이 보상 대상으로 밝힌 ‘백혈병 등 다섯 종류의 림프조혈기계암(혈액암), 뇌종양, 유방암’에 김씨의 병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병 탓에 2000년 퇴직 뒤 일하지 못하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지내며 병원비에 힘겨워 하던 김씨한테 지난해 5월 재개된 삼성 직업병 피해자 문제를 논의하는 교섭은 유일한 남은 희망이다. 그는 “열심히 일하다 몸이 망가졌는데 어떤 근거로 빠진 건지 모르겠다”며 “몸이 아파서 교섭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울먹였다. ‘반도체 노동자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삼성이 너무 협소하게 보상 대상을 정하는 바람에 김씨뿐 아니라 숱한 직업병 피해자들한테서 걱정하는 전화가 쏟아진다”고 말했다.
조정위에 참여한 삼성 반도체·엘씨디 직업병 피해자·가족 8명 외에 반올림에 제보한 피해자가 170명에 이른다. 삼성의 보상 대상 기준을 적용하면 이들의 상당수가 배제된다. 실제 산재를 신청한 반도체·엘씨디 노동자 51명 중 21명은 삼성의 보상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재직 기간 요건도 문제다. 삼성은 혈액암은 1년, 뇌종양·유방암은 5년 이상 일한 노동자만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이리되면 근로복지공단에서 유방암으로 산재를 인정받은 고 김도은씨도 근무기간이 4년8개월이라 삼성 쪽 기준으론 보상 대상이 아니다.
더구나 삼성은 질병과 근무 기간 요건을 채운 발병자라도 ‘특수건강진단 이력’이 있어야만 보상하겠다고 단서를 달았다. 산업안전보건법은 특정 유해 인자에 노출될 우려가 있는 노동자는 특수건강진단을 받게 한다. 그러나 삼성 반도체·엘씨디 공장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가 특수건강진단 대상은 아니며, 퇴직자는 자료가 없을 수도 있다. 실제 조정위에 참여한 직업병 피해자 8명의 역학조사 결과를 보면 특수건강진단 대상자는 4명뿐이다. 나머지 4명은 건강검진 자료가 아예 없거나 일반건강검진 내용만 언급됐다.
삼성전자 직원이 아닌 협력업체 노동자는 아예 보상 대상으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삼성직업병 가족대책위와 반올림은 원청의 안전보건관리 책임이 있는 만큼 협력업체 노동자도 보상 대상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4명의 삼성 반도체·엘씨디 협력업체 직원이 산재를 신청한 상태다.
이종란 노무사는 “공장에서 사용하는 수백종의 화학물질이 발암성, 생식·신경 독성 등 다양한 문제가 있는 만큼 모든 암, 전암성질환, 희귀난치성 질환, 생식보건 문제까지 보상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백수하 삼성전자 상무는 “전암성 질환, 희귀난치성 질환을 포함할 경우 위궤양, 대장 용종까지 해당돼 수천 종류의 질병을 보상하라는 것이라서 무리한 요구다”라며 “의학적 검토를 거쳐 대상 질병 등 6가지 기준을 제시했지만 조정위에서 합리적인 의견을 제안하면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기사등록 : 2015-01-19 오전 12:56:02 기사수정 : 2015-01-19 오전 11: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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