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당장 열 개의 삼성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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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킴이 작성일14-09-03 18:10 조회2,58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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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열 개의 삼성을 만들어야 한다”
주진우 기자 | ace@sisain.co.kr
[363호] 승인 2014.09.02 08:51:24
삼성 이건희 회장이 100일 넘도록 직무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자연스레 삼성의 미래를 생각하는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도 논의의 중심에 있는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홍 의원은 부자 감세나 저금리 고환율 정책, 정부보조금 등이 모두 재벌의 이익으로 직결되며, 정부가 매년 수조원을 재벌에 지원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그 가장 큰 수혜자는 삼성이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 정책위원으로 일했으며, 경제학자 시절부터 대표적인 재벌 전문가로 꼽힌 그를 만나 삼성의 미래를 물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지 100일이 넘었는데 아직 의식불명 상태다. 다시 돌아온다 해도 이전의 지위를 확보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삼성그룹의 재편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동안 일관되게 ‘재벌 개혁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된다’고 주장했다. 미국 대부호 록펠러의 명성도 시간이 흐르면서 어쩔 수 없이 약해졌다. 30년이 지나 2세대, 3세대로 교체되면 가문보다 이사진의 지위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재벌 역시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가문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다. 문제는 가문의 힘이 약해졌을 때 받는 충격이다. 그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는 재벌 개혁이 필수적이다. 재벌 개혁을 통해 선진형 기업 경영 구조로 가야 하는데, 삼성은 총수 1인에 매달리다 보니 지금 기업 전체가 흔들리는 상태다.
ⓒ시사IN 조남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우리나라에서는 재벌 개혁을 하자고 하면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얘기가 바로 나온다. 삼성이 망하고 나라가 망한다고 반발한다.
보수층이 우리나라 경제사회 시스템을 영미 국가형으로 만들었으니 재벌 개혁 역시 영미식으로 해야 한다. 미국도 재벌의 영향력이 강한 시대가 있었다. 190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약 20년인데, 당시 상황이 지금 한국과 유사했다. 거대 재벌이 등장하는 1890년대 이후 미국 경제는 점차 재벌로 돈이 몰리게 된다. 그 결과, 1907년 경제위기에 직면한다. 당시 미국은 경제위기의 원인이 재벌에 있다고 보고, 본격적으로 재벌 개혁을 논의했다. 1912년 대통령 선거의 주된 이슈 역시 재벌 개혁이었다. 윌슨 대통령은 당시 캐치프레이즈로 ‘머니 트러스트(금권신탁) 개혁’을 내세워 당선했다. JP모건이 장악하고 있는 금융자본을 손질하겠다는 것이었다.
윌슨 대통령의 재벌 개혁 구상은 성공했나?
그는 8년간 집권했지만 결국 재벌 개혁에는 실패했다. 그 여파로 윌슨이 물러나는 1920년부터 공화당이 세 번의 대선에서 연속 승리한다. 그때 공화당에서 펼친 정책이 지금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줄푸세’다. 자연히 재벌의 덩치는 커지고, 양극화는 심화됐다. 1929년 대공황도 결국 줄푸세 정책의 결과였다. 대공황 이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뉴딜’이라 불리는 대대적인 개혁 정책이 실시됐다. 대개 뉴딜 정책이 댐 짓는 사업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재벌을 완전히 분해하는 데 큰 힘을 기울였다. 대표적으로 금산분리 정책을 취했다. 그 유명한 ‘글래스-스티컬법’이다. 당시 미국 굴지의 기업들은 전부 JP모건의 통제 아래 있었다. JP모건은 은행·철강·철도·전기 등을 광범위하게 장악했다. 루스벨트는 은행법으로 이에 제동을 걸었다. 상업은행과 일반 기업을 서로 떼어놓고, 배당에 대해 세금을 물린 것이다. 은행이 일반 기업을 소유하고, 이 기업은 또 다른 기업을 소유하고…. 이렇게 사다리를 많이 쌓을수록 세금을 많이 부과했다. 뉴딜 정책과 세계대전이 맞물리면서 국가가 재벌을 통제한 결과, 미국의 재벌 시스템은 사라졌다.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재벌 집중적이고, 재벌 친화적인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오히려 재벌을 조장한다. 재벌들 세금 깎아주고, 규제 풀고, 노동자 탄압하는 ‘줄푸세’ 정책은 대표적인 재벌 지원 정책이다.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은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의 성장 동력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데 공감한다. 사실 그 시기부터 재벌 개혁에 뛰어들었어야 했는데, 이후 20년 동안 개혁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지금은 성장률이 마이너스에 머물고 있다. 게다가 기업은 물론이고 국가와 가계에도 빚이 쌓였다. 기업 부채는 몇 개 그룹을 제외하면 IMF 구제금융을 겪은 1990년대와 비슷한 수준이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등 일부 그룹에만 돈이 돈다.
서민경제는 정말 심각하다. 한계 상황에 온 것 같다. 근본적으로 판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2012년 대선 당시 이야기했던 부분이다. 지금까지의 방식이 아니라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중산층 서민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기업이 하청 구조를 이용해서 중소기업에 빨대를 꽂아놓은 구조다. 중소기업이 돈을 벌어도 결국 대기업으로 흘러간다. 이 빨대를 잘라내야 한다. 재벌이 아니라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한쪽에서 복지를 강화하게 되면 서민경제에 돈이 돈다. 서민경제가 활성화되면 결과적으로 재벌이 혜택을 본다. 텔레비전, 자동차 등의 소비가 늘어나니까. 이게 경제의 선순환이다.
박근혜 정부는 물론이고 정치권에서도 재벌 개혁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야당이 재벌에 대한 세금을 올리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여당의 반대로 좌절됐다. 여당에서는 재벌 이야기만 나오면 격렬하게 반대하는 의원들이 있다. 이들은 재벌에 세금을 물리면 기업 활동이 위축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봉급생활자 약 400만명의 세금을 올리는 데는 합의했다. 우리나라 정치·경제 현실이 이렇다. 봉급생활자 400만명의 세금을 올릴 때는 저항이 없는데, 재벌 세금을 한 푼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벌 세금은 깎아주고 서민한테는 세금을 더 빼앗아간다. 그리고 국가는 서민들로부터 거둔 세금을 다시 재벌에 퍼주는 실정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여당에서 창조경제활성화 특별위원회를 만들었다. 나도 야당 간사로 참여했다. 거기서 ‘우리나라는 연대보증 때문에 중소기업이 한번 망하면 회생이 어려우니, 연대보증을 없애자’고 주장했다. 그런데 허가를 낼 수 없다고 한다. 말로는 중소기업을 돕자고 하면서 중소기업에 정말 필요한 결정적인 정책은 절대 시행하지 않는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기획재정위에서 ‘면세점 입점 기회를 중소기업에게도 주자’고 주장했는데, 반대가 격렬하다. 현재 면세점은 신라와 롯데가 독점으로 입점한 형태다. 나라가 재벌에게만 특혜를 주는 꼴이다. 그래서 중소기업과도 좀 나눠먹으라는 것인데 쉽지 않다. 정부에서 주장하는 ‘창조경제’를 위해서는 창업 국가가 되어야 하고, 재기가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이게 불가능한 사회다.
ⓒ연합뉴스
2006년 휠체어에 탄 채로 입국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
왜 그럴까?
무엇보다 재벌 의존도가 너무 크다. 경제의 사고방식을 다르게 할 수가 없다. 반면 미국은 다르다. 예를 들어 애플이나 페이스북 등은 20년, 30년밖에 안 된 기업이다. 많은 기업이 망하고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 건강한 경제다. 우리나라에서 이게 불가능한 이유는 재벌 때문이다. 미국이 재벌로 인해 경제위기에 직면했다는 것을 교훈 삼아 위기가 오기 전에 재벌 개혁을 해야 한다.
당장 삼성그룹의 지배 구조가 이슈다. 한국 경제가 건강해지려면 이번 기회에 삼성그룹이 해체되어야 한다고 보나?
삼성그룹의 덩치가 큰 게 문제라기보다 그 자체가 사회에 피해를 주는 게 문제다. 그러니 피해를 못 주게 하면 된다. 소액지분으로 거대 그룹을 지배하면서 경쟁을 저해하고 일감을 몰아주는 폐해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래야 삼성의 근본적인 장점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부작용을 줄여나갈 수 있다. 일단 삼성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지금처럼 독보적인 경제력으로 법 위에 올라서려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이미 한국 경제의 핵심 산업들은 중국으로 주도권이 넘어간 상태다. 삼성의 휴대전화 사업도 수명을 다해가는 것 아니냐. 빨리 다른 먹을거리를 찾아야 한다. 삼성 혼자서는 이 상황을 극복하기 어렵다. 열 개의 삼성이 있어도 중국과 경쟁할까 말까인데, 삼성 혼자서 경제를 지탱하는 구조는 곤란하다. 당장 열 개의 삼성을 만드는 일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삼성은 물론 한국 경제 전체가 중국 경제에 종속될 우려가 크다.
삼성은 어떻게든 수익 모델을 찾아낼 것이다. 의료민영화 역시 결국 삼성의 배를 불리는 정책이 되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의료민영화가 가능해지려면 공적연금 약화, 민간연금 강화라는 두 가지 고리가 서로 맞물려야 한다. 국회에서는 새누리당이 공적연금 시스템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지속적으로 민간연금의 지원 강화를 골자로 하는 세법을 발의하는데, 최대 수혜자는 삼성생명이다. 삼성에서 ‘한국은 연금이 부족하니 민간연금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올리면 정부가 이에 호응하는 거다. 최근 임명된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친재벌 인사다. 임명된 지 몇 달 안 돼서 신속하게 친재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이유는 뒤에서 경제정책을 공급하는 그룹이 있어서인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그룹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많다. 이재용 시대가 열릴지도 잘 모르겠다. 지금 차명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에 달렸다고 본다.
이건희 집안이 삼성을 소유하되 경영에서 물러날 가능성은?
어렵다고 본다. 삼성은 지금 관료주의에 빠져 있다.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재벌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벌 구성원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끊임없이 서민경제에 침투한다. 삼성가의 아들, 며느리, 퇴직자 등이 라이선스를 하나씩 받아서 골목 상권에 진출하는 식이다. 이렇듯 삼성은 관료주의에 빠져 있다. 스스로의 개혁은 쉽지 않을 것이다.
장하준·정승일 등 일부 경제학자는 재벌 그룹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삼성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말이다. 금산분리 원칙까지 유예를 요구하는 듯하다.
삼성 특별법에 찬성하는 경제학자들은 스웨덴의 발렌베리 그룹을 모델로 삼는다. 경영권을 인정해주고 공적인 기능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 국회에서 누가 동의하겠나. 여당에서는 동의할지 모르지만 야당으로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삼성 특별법은 엄연히 특혜법이다. 하나의 재벌, 특히 삼성그룹을 위해서 이미 세법은 많이 바뀌었다. 삼성그룹이 절세하는 방법이 밝혀지면 다른 기업이 따라하고, 이를 막으려고 법을 만들면 삼성그룹은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내는 식이다. 세법 중에서도 특히 상속세법은 거의 ‘삼성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 때문에 변화했고 삼성 때문에 만들어졌다. 삼성 특별법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논리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
녹취 정리: 조은희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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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우 기자 | ace@sisain.co.kr
[363호] 승인 2014.09.02 08:51:24
삼성 이건희 회장이 100일 넘도록 직무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자연스레 삼성의 미래를 생각하는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도 논의의 중심에 있는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홍 의원은 부자 감세나 저금리 고환율 정책, 정부보조금 등이 모두 재벌의 이익으로 직결되며, 정부가 매년 수조원을 재벌에 지원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그 가장 큰 수혜자는 삼성이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 정책위원으로 일했으며, 경제학자 시절부터 대표적인 재벌 전문가로 꼽힌 그를 만나 삼성의 미래를 물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지 100일이 넘었는데 아직 의식불명 상태다. 다시 돌아온다 해도 이전의 지위를 확보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삼성그룹의 재편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동안 일관되게 ‘재벌 개혁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된다’고 주장했다. 미국 대부호 록펠러의 명성도 시간이 흐르면서 어쩔 수 없이 약해졌다. 30년이 지나 2세대, 3세대로 교체되면 가문보다 이사진의 지위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재벌 역시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가문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다. 문제는 가문의 힘이 약해졌을 때 받는 충격이다. 그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는 재벌 개혁이 필수적이다. 재벌 개혁을 통해 선진형 기업 경영 구조로 가야 하는데, 삼성은 총수 1인에 매달리다 보니 지금 기업 전체가 흔들리는 상태다.
ⓒ시사IN 조남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우리나라에서는 재벌 개혁을 하자고 하면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얘기가 바로 나온다. 삼성이 망하고 나라가 망한다고 반발한다.
보수층이 우리나라 경제사회 시스템을 영미 국가형으로 만들었으니 재벌 개혁 역시 영미식으로 해야 한다. 미국도 재벌의 영향력이 강한 시대가 있었다. 1900년대부터 1920년대까지 약 20년인데, 당시 상황이 지금 한국과 유사했다. 거대 재벌이 등장하는 1890년대 이후 미국 경제는 점차 재벌로 돈이 몰리게 된다. 그 결과, 1907년 경제위기에 직면한다. 당시 미국은 경제위기의 원인이 재벌에 있다고 보고, 본격적으로 재벌 개혁을 논의했다. 1912년 대통령 선거의 주된 이슈 역시 재벌 개혁이었다. 윌슨 대통령은 당시 캐치프레이즈로 ‘머니 트러스트(금권신탁) 개혁’을 내세워 당선했다. JP모건이 장악하고 있는 금융자본을 손질하겠다는 것이었다.
윌슨 대통령의 재벌 개혁 구상은 성공했나?
그는 8년간 집권했지만 결국 재벌 개혁에는 실패했다. 그 여파로 윌슨이 물러나는 1920년부터 공화당이 세 번의 대선에서 연속 승리한다. 그때 공화당에서 펼친 정책이 지금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줄푸세’다. 자연히 재벌의 덩치는 커지고, 양극화는 심화됐다. 1929년 대공황도 결국 줄푸세 정책의 결과였다. 대공황 이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뉴딜’이라 불리는 대대적인 개혁 정책이 실시됐다. 대개 뉴딜 정책이 댐 짓는 사업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재벌을 완전히 분해하는 데 큰 힘을 기울였다. 대표적으로 금산분리 정책을 취했다. 그 유명한 ‘글래스-스티컬법’이다. 당시 미국 굴지의 기업들은 전부 JP모건의 통제 아래 있었다. JP모건은 은행·철강·철도·전기 등을 광범위하게 장악했다. 루스벨트는 은행법으로 이에 제동을 걸었다. 상업은행과 일반 기업을 서로 떼어놓고, 배당에 대해 세금을 물린 것이다. 은행이 일반 기업을 소유하고, 이 기업은 또 다른 기업을 소유하고…. 이렇게 사다리를 많이 쌓을수록 세금을 많이 부과했다. 뉴딜 정책과 세계대전이 맞물리면서 국가가 재벌을 통제한 결과, 미국의 재벌 시스템은 사라졌다.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재벌 집중적이고, 재벌 친화적인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오히려 재벌을 조장한다. 재벌들 세금 깎아주고, 규제 풀고, 노동자 탄압하는 ‘줄푸세’ 정책은 대표적인 재벌 지원 정책이다.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은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의 성장 동력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데 공감한다. 사실 그 시기부터 재벌 개혁에 뛰어들었어야 했는데, 이후 20년 동안 개혁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지금은 성장률이 마이너스에 머물고 있다. 게다가 기업은 물론이고 국가와 가계에도 빚이 쌓였다. 기업 부채는 몇 개 그룹을 제외하면 IMF 구제금융을 겪은 1990년대와 비슷한 수준이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등 일부 그룹에만 돈이 돈다.
서민경제는 정말 심각하다. 한계 상황에 온 것 같다. 근본적으로 판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2012년 대선 당시 이야기했던 부분이다. 지금까지의 방식이 아니라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중산층 서민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기업이 하청 구조를 이용해서 중소기업에 빨대를 꽂아놓은 구조다. 중소기업이 돈을 벌어도 결국 대기업으로 흘러간다. 이 빨대를 잘라내야 한다. 재벌이 아니라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한쪽에서 복지를 강화하게 되면 서민경제에 돈이 돈다. 서민경제가 활성화되면 결과적으로 재벌이 혜택을 본다. 텔레비전, 자동차 등의 소비가 늘어나니까. 이게 경제의 선순환이다.
박근혜 정부는 물론이고 정치권에서도 재벌 개혁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야당이 재벌에 대한 세금을 올리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여당의 반대로 좌절됐다. 여당에서는 재벌 이야기만 나오면 격렬하게 반대하는 의원들이 있다. 이들은 재벌에 세금을 물리면 기업 활동이 위축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봉급생활자 약 400만명의 세금을 올리는 데는 합의했다. 우리나라 정치·경제 현실이 이렇다. 봉급생활자 400만명의 세금을 올릴 때는 저항이 없는데, 재벌 세금을 한 푼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벌 세금은 깎아주고 서민한테는 세금을 더 빼앗아간다. 그리고 국가는 서민들로부터 거둔 세금을 다시 재벌에 퍼주는 실정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여당에서 창조경제활성화 특별위원회를 만들었다. 나도 야당 간사로 참여했다. 거기서 ‘우리나라는 연대보증 때문에 중소기업이 한번 망하면 회생이 어려우니, 연대보증을 없애자’고 주장했다. 그런데 허가를 낼 수 없다고 한다. 말로는 중소기업을 돕자고 하면서 중소기업에 정말 필요한 결정적인 정책은 절대 시행하지 않는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기획재정위에서 ‘면세점 입점 기회를 중소기업에게도 주자’고 주장했는데, 반대가 격렬하다. 현재 면세점은 신라와 롯데가 독점으로 입점한 형태다. 나라가 재벌에게만 특혜를 주는 꼴이다. 그래서 중소기업과도 좀 나눠먹으라는 것인데 쉽지 않다. 정부에서 주장하는 ‘창조경제’를 위해서는 창업 국가가 되어야 하고, 재기가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이게 불가능한 사회다.
ⓒ연합뉴스
2006년 휠체어에 탄 채로 입국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
왜 그럴까?
무엇보다 재벌 의존도가 너무 크다. 경제의 사고방식을 다르게 할 수가 없다. 반면 미국은 다르다. 예를 들어 애플이나 페이스북 등은 20년, 30년밖에 안 된 기업이다. 많은 기업이 망하고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 건강한 경제다. 우리나라에서 이게 불가능한 이유는 재벌 때문이다. 미국이 재벌로 인해 경제위기에 직면했다는 것을 교훈 삼아 위기가 오기 전에 재벌 개혁을 해야 한다.
당장 삼성그룹의 지배 구조가 이슈다. 한국 경제가 건강해지려면 이번 기회에 삼성그룹이 해체되어야 한다고 보나?
삼성그룹의 덩치가 큰 게 문제라기보다 그 자체가 사회에 피해를 주는 게 문제다. 그러니 피해를 못 주게 하면 된다. 소액지분으로 거대 그룹을 지배하면서 경쟁을 저해하고 일감을 몰아주는 폐해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래야 삼성의 근본적인 장점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부작용을 줄여나갈 수 있다. 일단 삼성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지금처럼 독보적인 경제력으로 법 위에 올라서려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이미 한국 경제의 핵심 산업들은 중국으로 주도권이 넘어간 상태다. 삼성의 휴대전화 사업도 수명을 다해가는 것 아니냐. 빨리 다른 먹을거리를 찾아야 한다. 삼성 혼자서는 이 상황을 극복하기 어렵다. 열 개의 삼성이 있어도 중국과 경쟁할까 말까인데, 삼성 혼자서 경제를 지탱하는 구조는 곤란하다. 당장 열 개의 삼성을 만드는 일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삼성은 물론 한국 경제 전체가 중국 경제에 종속될 우려가 크다.
삼성은 어떻게든 수익 모델을 찾아낼 것이다. 의료민영화 역시 결국 삼성의 배를 불리는 정책이 되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의료민영화가 가능해지려면 공적연금 약화, 민간연금 강화라는 두 가지 고리가 서로 맞물려야 한다. 국회에서는 새누리당이 공적연금 시스템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지속적으로 민간연금의 지원 강화를 골자로 하는 세법을 발의하는데, 최대 수혜자는 삼성생명이다. 삼성에서 ‘한국은 연금이 부족하니 민간연금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올리면 정부가 이에 호응하는 거다. 최근 임명된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친재벌 인사다. 임명된 지 몇 달 안 돼서 신속하게 친재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이유는 뒤에서 경제정책을 공급하는 그룹이 있어서인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그룹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많다. 이재용 시대가 열릴지도 잘 모르겠다. 지금 차명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에 달렸다고 본다.
이건희 집안이 삼성을 소유하되 경영에서 물러날 가능성은?
어렵다고 본다. 삼성은 지금 관료주의에 빠져 있다.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재벌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벌 구성원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끊임없이 서민경제에 침투한다. 삼성가의 아들, 며느리, 퇴직자 등이 라이선스를 하나씩 받아서 골목 상권에 진출하는 식이다. 이렇듯 삼성은 관료주의에 빠져 있다. 스스로의 개혁은 쉽지 않을 것이다.
장하준·정승일 등 일부 경제학자는 재벌 그룹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삼성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말이다. 금산분리 원칙까지 유예를 요구하는 듯하다.
삼성 특별법에 찬성하는 경제학자들은 스웨덴의 발렌베리 그룹을 모델로 삼는다. 경영권을 인정해주고 공적인 기능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 국회에서 누가 동의하겠나. 여당에서는 동의할지 모르지만 야당으로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삼성 특별법은 엄연히 특혜법이다. 하나의 재벌, 특히 삼성그룹을 위해서 이미 세법은 많이 바뀌었다. 삼성그룹이 절세하는 방법이 밝혀지면 다른 기업이 따라하고, 이를 막으려고 법을 만들면 삼성그룹은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내는 식이다. 세법 중에서도 특히 상속세법은 거의 ‘삼성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 때문에 변화했고 삼성 때문에 만들어졌다. 삼성 특별법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논리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
녹취 정리: 조은희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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